
<기생수>는 단순한 SF 호러 애니메이션을 넘어, 인간과 기생생물이라는 두 종족 간의 대립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처음 접했을 때는 잔인하고 무섭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협력과 이타심, 그리고 마음의 여유라는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가치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생수>가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와 주요 장면들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인간 본질: 협력과 이타심이 만든 승리
<기생수>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입니다. 작품 속 기생생물들은 개체 하나하나가 인간보다 월등히 강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집단이 형성되기도 힘들고 서로 협력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반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해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시청 작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야마기시를 필두로 한 기동대가 편성되어 시청에 잠복한 기생생물을 전부 사살하는 작전이 진행될 때, 기생생물들은 협력해 싸운다면 승산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본능 때문에 각자 도망가다 모두 전멸하게 됩니다. 특히 고토의 사지에 기생한 네 개의 개체가 각자 이기적인 선택을 하게 되어 결국 모두 죽게 된 장면은 이기심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반면 신이치와 미기는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전략으로 지금까지의 수많은 전투에서 끝까지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미기는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이타적인 선택지를 고르게 되었고, 이 인간적인 선택지는 궁극적으로 승리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기생생물은 이득만을 생각하며 '효율적으로' 살아가지만, 인간은 이타심과 여유를 가지고 '비효율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다른 이를 위하는 마음과 협동심이 둘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점은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합니다.
| 구분 | 기생생물 | 인간 |
|---|---|---|
| 사고방식 | 자기중심적, 이기적 | 협력적, 이타적 |
| 집단 형성 | 어려움 | 가능 |
| 생존 전략 | 개인의 생존 우선 | 집단의 생존 우선 |
| 결과 | 전멸 | 승리 |
타미야의 변화: 기생생물에서 인간으로의 여정
타미야는 <기생수>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학교를 떠난 타미야는 얼굴과 신분을 바꾼 후 출산을 하게 되고, 시장이 당선된 히로카와라는 개체와 접촉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본능에 따라 인간을 먹어치우고 방해가 되면 전부 죽여왔던 타미야는 점차 인간처럼 식사를 통해 필요한 영양소를 확보하게 되었고, 인간에 대해 공부하고 인간과 공생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타미야의 변화는 인간 아기를 양육하면서 더욱 가속화됩니다.
인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로 인해 기생생물이 거의 가지지 못한 기쁨이라는 감정을 최근에 습득하게 되어 거울 앞에서 미친 듯이 웃은 적이 있었던 타미야는, 사토미를 만나면서 이타성과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개화하게 됩니다. 사토미가 신이치를 걱정하는 것처럼 자신 또한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탐정을 죽이고 아이를 되찾으려 했고, 자신의 목숨보다 아이의 목숨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타미야의 마지막 장면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경관들의 일제 사격 속에서도 타미야는 이상하게도 반격하지 않았습니다. 촉수로 경관을 공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화된 자신의 피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당초 계획했던 것처럼 아이를 신이치에게 넘겨준 타미야는 신이치에게 감사 인사까지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타미야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로, 소중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인간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타미야의 변화는 단순히 한 개체의 변화가 아니라, 기생생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되어 간다는 작품의 메시지를 상징합니다. 집단 생활, 사회 생활을 하며 점점 인간에 가까워지게 된 무사호 같은 기생생물이나 인간으로 죽게 된 타미야 등 개체 차는 있지만, 기생생물들은 점점 인간에게 동화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타미야가 사랑하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총격을 다 맞아준 행동은 신이치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화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냄비를 잡았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철학적 고찰: 지구, 인간, 그리고 기생수
<기생수>가 던지는 가장 심오한 질문은 "인간은 과연 지구의 기생충인가?"입니다. 히로카와는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인간들에게 열변을 토하며, 지구 생태계 정점에 도달한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살인자, 지구를 먹는 기생충이라고 주장합니다. 벌레 충이 아닌 짐승 수를 붙여 '기생수'라고 말한 히로카와는 기생생물들이 지구를 먹는 기생수의 수를 줄여야 생태계의 균형과 건강한 지구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하게 됩니다.
신이치는 고토를 죽이려다 잠시 주춤하게 됩니다. 고토가 부활할 확률은 반반이라는 미기의 말을 듣고, 히로카와의 연설인 '인간은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지구를 파괴하는 기생수'라는 발언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수십, 수백 명의 인간을 손쉽게 죽일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고토마저 인간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독성 폐기물 때문에 무너졌고, 환경을 망가뜨리는 주범인 인간이 생존하려는 생명을 죽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기는 신이치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최초의 생명이 태어난 수십억 년 전, 거기에서 몇억 년만 더 올라가기만 해도 지구는 소행성이 비치고 초화산의 분출이 수시로 일어나는 행성, 생명이 살 수 없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한 역사를 가진 지구 입장에서 인간들이 파괴한 환경은 간의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환경 보호 활동은 지구를 위한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행위가 아닌 인간이 사는 환경이 파괴되어 자신들이 멸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이기적인 행위였습니다.
히로카와의 말과 달리 지구는 아파하지도 않고 인간이 지구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신이치는 관점을 인간의 관점으로 되돌리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고토를 방치할 수 없었던 신이치는 인간의 관점에서 자신의 종족을 우선시하여 고토를 죽이게 됩니다. 필요한 영양소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서로 협력하는 등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타자의 존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물이라고 생각하게 된 신이치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을 지구의 생태계에 기생하는 짐승, 기생수라고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고찰은 작품을 단순한 액션물이 아닌, 생명의 본질과 인간의 위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명작으로 만들어줍니다. 개체수가 수십억이 넘고 장수하는 인간은 생태계의 정점을 찍을 정도의 강력한 힘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타 종족에 비해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이 비교적으로 더 돋보일 뿐, 인간 또한 지구에 기생하는 평범한 기생수 중 하나였다는 깨달음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게 해줍니다.
<기생수>는 다른 애니메이션들처럼 '선과 악'의 싸움을 표현한 것이 아닌, 두 종족 간의 대립을 풀어나가며 인간의 본질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지구의 입장을 멋대로 이해했다고 착각해 같은 인간을 죽이게 된 히로카와가 아닌, 인간의 본질은 살인이라고 착각해 자신의 살인 욕구를 정당화하는 우라가미가 아닌,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타미야처럼,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미기처럼, 기생생물이 되어가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을 되찾은 신이치처럼, 사회 구성원끼리 서로 협력하고 이타성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주제를 명확히 전달합니다. 다소 무섭고 기괴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넘쳐나는 여유와 힘으로 다른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기생수>는 누구나 한 번쯤 보면 좋을 명작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Wy6zBsmeA-w&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