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이 사람이 나한테 뭘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계산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어느 정도 합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체인소맨 : 레제편>을 보고 나오면서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습니다. 레제와 덴지의 사랑이 너무 순수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고, 그래서 더 슬펐던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는 사랑이 가능할까
레제와 덴지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게 없는 관계였습니다. 덴지는 데블 헌터로서 겨우 안정적인 삶을 찾았고, 레제는 시골 쥐처럼 조용히 살고 싶어했던 사람이었죠. 둘 다 서로를 선택할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마키마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등지면 덴지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레제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결국 서로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꼈던 건 설렘보다는 위화감에 가까웠습니다. 현실에서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싶었거든요.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무의식적으로 계산합니다. 이 사람의 직업, 성격, 경제력, 미래 가능성까지 따지면서 '괜찮은 사람'을 찾죠.
솔직히 레제와 덴지의 관계는 비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저는 그 비합리성이 오히려 사랑의 본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왕자가 장미를 위해 시간을 낭비했던 것처럼, 덴지와 레제도 서로를 위해 자신의 안전과 미래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진짜 사랑이라는 걸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순수한 사랑은 왜 어려운가
마키마는 극 중에서 지배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체인소의 심장, 즉 '쓸 만한 것'을 가진 덴지를 아끼고 인정해줍니다. 하지만 덴지 자체를 사랑한 건 아니었죠. 이 대목에서 제가 느꼈던 건 단순히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한 씁쓸함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입니다. 학벌, 직장, 연봉, 외모까지 모든 걸 기준에 맞춰 재단하죠. 그래서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쓸 만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을 포장하느라 진짜 모습을 숨기게 됩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가 한국에서 유독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화려한 작화와 전투씬도 분명 좋았지만, 사람들이 진짜 공감한 건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에 대한 갈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덴지는 체인소의 심장이 아니라 그냥 덴지로서 레제에게 사랑받았고, 레제도 폭탄의 악마가 아니라 그냥 레제로서 덴지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예정되었던 결말
하지만 영화는 결국 그들이 만나지 못하는 결말을 보여줍니다. 마키마라는 사회 시스템이 그들의 만남을 가로막았고, 레제는 결국 제거됐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지배당하며 살아가고, 그 안에서 순수한 형태의 사랑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덴지와 레제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슬픕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기에 순수했고, 그래서 가장 아름다웠지만, 결국 사회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제가 언젠가 느꼈던 공허함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깨달음 말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레제와 덴지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마키마와 싸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합리성과 효율을 강요하는 사회 안에서 비합리적인 사랑을 꿈꾸는 건 어리석은 일일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언젠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믿고 싶습니다. 레제와 덴지처럼 말입니다.